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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Digital 물가자료 02-799-0741
― 숨어서 기다리는 무기, 바다의 억제력수상함은 서로를 보며 싸운다. 수평선 너머에서 상대의 마스트가 보이면 포신이 돌아가고, 사거리와 장갑과 속도를 겨루는 전통적인 해전이 시작된다. 잠수함은 이 규칙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숨죽이고 기다리다가 상대가 가장 방심한 순간에 단 한 번 모습을 드러내는 무기다. 그런데 이 은밀한 무기가 바다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개념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잠수함은 적을 얼마나 많이 침몰시키느냐보다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 자체로 상대의 행동을 바꾸었기 때문이다.90분 만에 사라진 순양함 세 척잠수함이 전쟁의 판도를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은 1914년 9월 22일 아침에 처음으로 분명해졌다. 북해에서 독일 잠수함 U-9가 영국 장갑순양함 아부키르, 크레시,..
전쟁의 역사는 사람과 적 사이의 거리가 벌어져 온 역사이기도 하다. 창과 칼은 상대의 숨소리가 들리는 거리에서 휘둘렀고, 활과 총은 그 거리를 수십 미터에서 수백 미터로 넓혔다. 대포와 미사일은 수백 킬로미터 밖의 적을 겨냥하게 했으며, 드론은 조종사를 지구 반대편의 사무실에 앉혔다. 이제는 거리만이 아니라 판단 자체가 기계 쪽으로 옮겨 가고 있다. 사람은 여전히 전쟁의 중심에 있지만, 직접 싸우는 사람에서 판단하고 통제하는 사람으로 자리를 바꾸는 중이다. 이 연재의 마지막 질문이 '사람은 어디까지 싸울까'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변화는 이미 우크라이나의 하늘에서 눈에 보이게 나타났다. 값싼 FPV 드론이 전장의 주역이 되면서 전장 사상자의 상당수, 많게는 70~80%를 드론이 낸다는 추산까지 나온다. 집..
보이지 않는 인프라가 바꾸는 전쟁의 비용전쟁이라고 하면 우리는 여전히 포성과 탱크, 하늘을 가르는 전투기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현대전에서는 총성이 울리기 전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쟁이 시작되기도 한다. 위성이 보내는 위치 신호와 통신망을 오가는 영상과 명령, 그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이터센터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최신 무기도 성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전쟁의 기반이 전통적인 무기에서 정보 인프라까지 넓어졌다는 말은 이제 비유에 그치지 않는다. 통신이 끊기고 위치가 흔들리며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게 되는 순간, 전쟁은 전선 밖의 일상과 경제활동까지 파고든다.침공 한 시간 전, 모뎀부터 꺼졌다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기 직전 미국 위성통신업체 비아샛(Viasat)..
전쟁에도 가격표가 있다. 올해 초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을 다룬 기사에는 숫자 두 개가 거듭 등장했다. 하나는 이란이 쏘아 올리는 샤헤드 드론 한 대의 생산비로, 대체로 2만~5만 달러로 추정된다. 다른 하나는 이 드론을 떨어뜨리는 데 쓰는 패트리어트 요격미사일 한 발의 값인데, 약 400만 달러로 알려져 있다. 단순히 나누면 80배에서 200배의 차이다. 가계부를 쓰는 사람 눈으로 봐도 이상한 거래다. 비싼 쪽이 쏠 때마다 밑지는 장사이기 때문이다.정밀타격의 문턱이 내려앉다정찰과 정밀타격은 오랫동안 강대국의 몫이었다. 위성과 정찰기로 표적을 찾고 유도무기로 맞히려면 막대한 돈과 기술, 이를 받쳐줄 산업 기반이 있어야 했다. 작은 나라가 같은 능력을 갖추려면 강대국에서 사 오거나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드..
1945년 8월 6일 아침 8시 15분, 히로시마 상공에서 폭탄 하나가 터졌다. 사흘 뒤인 9일에는 나가사키가 같은 일을 겪었다. 그해 말까지 두 도시에서 숨진 사람은 적게는 11만, 많게는 21만 명으로 추산된다. 추정치의 폭이 이렇게 넓다는 사실이 그날의 혼란을 대신 말해 준다. 사망자를 셀 사람도, 명단을 만들 행정도 함께 무너졌기 때문이다.그런데 그 뒤로 81년이 흐르도록 핵무기는 전쟁에서 단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인류는 새 무기가 나오면 대개 써 보았다. 화약이 그랬고, 기관총이 그랬고, 독가스와 폭격기가 그랬다. 그런데 핵무기는 수만 발씩 만들어 쌓아 두고도 쓰지 않았다. 가장 강한 무기가 가장 쓰이지 않는 무기가 되었다는 이 역설이 이번 글의 출발점이다.이기는 무기에서, ..
진주만이나 미드웨이와 같은 전쟁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레이더는 살상무기는 아니지만 전쟁에서 꼭 필요한 장비이다. 1941년 12월 7일 새벽, 하와이 오아후섬 북단의 오파나 포인트. 이동식 레이더 앞에 앉아 있던 미 육군 병사 두 명이 화면에서 낯선 신호를 발견했다. 북쪽 바다에서 커다란 편대가 다가오고 있었고, 거리는 200킬로미터를 훌쩍 넘었다. 병사들은 곧바로 보고했지만 돌아온 말은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마침 본토에서 B-17 폭격기가 도착할 예정이었으므로 그 편대려니 한 것이다. 50분쯤 지나 진주만 상공에는 일본 항공기가 나타났다.이 장면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레이더가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은 분명히 먼저 보였다. 모자랐던 것은 탐지가 아니라 탐지된 정보를 판단과 행동으로 이어 ..
― 정찰기의 시선에서 제공권의 시대로, 전쟁은 어떻게 하늘로 넓어졌는가두 겹으로 포개진 날개 사이에 가느다란 지주가 서 있고, 그 사이를 철선이 팽팽하게 가로지른다. 조종석 위에는 덮개도 없어서 사람이 몸을 내밀면 그대로 바람을 맞았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의 복엽기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전투기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날렵하고 위협적이라기보다 하늘에 떠 있다는 사실부터 신기하게 느껴지는데, 이 작은 비행기들이 맡은 일도 처음에는 대체로 적을 내려다보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쟁터에서는 남의 움직임을 본다는 행위가 오래도록 구경에 머물 수 없었다. 비행기가 등장하기 전, 적의 위치를 알아내고 지휘관에게 소식을 가져오는 임무는 기병의 중요한 몫이었다. 말은 사람보다 빠르게 움직였고, 정찰대는..
1925년 6월, 영국의 육군 원수 더글러스 헤이그는 왕립수의학회 행사에서 연설을 했다. 비행기와 전차는 어디까지나 사람과 말을 거드는 보조 수단일 뿐이며, 앞으로도 혈통 좋은 말이 쓰일 곳은 지금껏 그래왔듯 충분하리라는 취지였다. 이 발언은 『타임스』에 실렸고, 훗날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군인의 대명사처럼 인용되곤 한다. 그런데 이 장면을 비웃기만 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다. 헤이그가 틀렸다는 건 결과를 아는 우리의 말이다. 그날 그 자리의 사람들에게 말은 수천 년 동안 한 번도 배신한 적 없는 무기였다. 속도를 지배하던 동물전장에서 속도는 곧 힘이었다. 적보다 먼저 도착하고, 흩어진 대열의 틈을 파고들고, 무너진 적을 끝까지 쫓아가 승부를 확정 짓는 일은 오랫동안 말의 몫이었다. 기병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