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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Digital 물가자료 02-799-0741
1453년 5월 29일 새벽,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오스만 군에게 함락됐다. 이 도시는 천 년 가까이 난공불락으로 통했다. 5세기 초에 쌓은 육지 쪽 성벽은 해자와 바깥 성벽, 안쪽 성벽이 차례로 겹친 구조였고, 숱한 침략자가 그 앞에서 물러났다. 도시가 그렇게 오래 버틴 데는 두꺼운 돌벽의 몫이 컸다.그 성벽을 끝내 흔든 것은 대포였다. 오스만 군은 기술자 우르반이 만든 거대한 청동 대포를 비롯해 여러 문의 포를 끌고 와 50여 일 동안 같은 구간을 두들겼다. 물론 대포 때문에만 무너졌다고 말하면 지나치다. 방어군은 만 명에도 못 미쳤다고 전해지고, 공격군은 그보다 몇 배나 많았다. 그래도 높고 곧게 선 돌담이 쇠뭉치를 맞으면 약해진다는 사실이 이날 유럽 전체에 선명하게 새겨졌다.사실 충격은 그보다 조금 ..
'모순(矛盾)'이라는 말에는 창과 방패를 팔던 장사꾼이 나온다. 『한비자』에 실린 이야기다. 초나라 상인이 방패를 들고서는 어떤 창도 뚫지 못한다고 자랑하더니, 곧이어 창을 집어 들고는 어떤 방패든 뚫는다고 큰소리를 쳤다. 지켜보던 사람이 물었다.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찌 되느냐고. 상인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논리를 따지는 자리라면 상인이 진 게 맞다. 하지만 전쟁터는 그 질문 앞에서 입을 다물지 않았다. 뚫리면 더 단단한 방패를 만들고, 그 방패가 나오면 더 날카로운 창을 벼리면서 몇천 년 동안 몸으로 답해 왔다. 말 속에서는 허점이던 모순이 역사 속에서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 바퀴였던 셈이다.갑옷과 화살부터 보자. 중세 유럽의 기사는 쇠고리를 엮은 사슬갑옷으로 몸을 감쌌다. 그런데 석궁과 장궁..
― 미래경제와 삶의 질예전에는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의 삶도 따라서 좋아질 것이라고 믿기 쉬웠다. 공장이 더 바쁘게 돌아가고 기업의 매출이 늘어나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사람들의 생활도 그만큼 넉넉해질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가난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는 경제성장이 집과 음식, 의료와 교육을 개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풍요로워진 뒤부터는 사정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소득이 늘어도 사람은 여전히 피곤할 수 있고, 넓은 집에서 혼자 외로울 수도 있으며, 생산성이 높아졌는데도 아침부터 밤까지 일해야 한다면 삶이 좋아졌다고 선뜻 말하기 어렵다.그런데 이제는 여기에 새로운 변화까지 더해졌다. 사람은 줄어들고 있고, 그 빈자리를 로봇과 인공지능이 조금씩 메우기 시작했다. 보고서를 정리하고 번역..
― 채용 감소, 직무 재설계, 소수정예 조직과 AI 에이전트예전에는 회사가 커지면 일단 사람부터 뽑았다. 주문이 늘면 영업사원을 들이고, 거래처가 많아지면 회계와 관리 인력을 보탰으며, 보고서가 쌓이면 사무직을 늘렸다. 직원 수가 곧 회사의 덩치였고, 사람이 많다는 것은 어느 정도 성장의 증거이기도 했다. 그런데 AI가 회사 안으로 들어오면서 이 익숙한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보고서를 정리하고 자료를 찾고 이메일을 쓰고 고객 문의에 답하는 일을 AI가 순식간에 해낸다면, 회사는 예전처럼 같은 수의 사람을 계속 뽑아야 할까. 이제 채용공고를 내기 전에 기업이 먼저 던질 질문은 "사람을 한 명 더 뽑을까"가 아니라 **"이 일을 사람이 해야 하는가, AI가 할 수 있는가"**가 될지도 모른다.AI가 일자리에..
― 이민의 경제학사람이 모자라면 사람을 데려오면 된다.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해법이다. 수확철마다 일손이 달리는 농촌이 있고, 구인광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는 지방 공장이 있다. 조선소와 건설현장, 식당과 돌봄 현장에서도 하소연은 비슷하다. 젊은 사람은 줄어드는데 일은 그대로이니, 외국인 노동자가 그 빈자리를 메우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실제로 한국의 생산현장은 이미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외국인을 더 받아들이면 인구감소도 풀릴까. 일손 부족에는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인구감소 전체를 풀어줄 만능열쇠는 아니다.인구가 줄면 경제는 먼저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모습으로 타격을 받는다. 기업은 사람을 못 구해 생산을 줄이거나 임금을 올려야 하고,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내는 사람도 함께 줄어든다..
― 인구의 역전과 AI 시대, 재정과 사회보장의 갈림길한 집안의 살림도 버는 사람이 줄고 쓰는 사람이 늘어나면 금세 팍팍해진다. 부모가 은퇴하고 자녀가 아직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집이라면 한두 사람의 소득으로 여러 사람의 생활비를 감당해야 하고, 갑자기 병원비나 교육비까지 늘어나면 가계는 저축을 줄이거나 지출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할 수밖에 없다. 나라의 살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규모가 훨씬 크고,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처럼 한 세대가 낸 돈이 다른 세대의 생활을 떠받치는 제도가 얽혀 있어 훨씬 복잡하다. 그래서 저출산과 고령화가 계속되면 이런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세금과 보험료를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연금과 의료, 돌봄을 받을 사람은 늘어난다면 그 비용은 누가 감당해야 할까.한국은 이미 이 질문..
― 고령화와 돌봄경제, 그리고 AI가 할 수 있는 일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젊을 때는 병원도 돌봄도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만, 나이가 들면 어느 순간 병원이 생활의 일부가 되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하루를 보내기 어려워지는 때가 찾아오곤 한다. 예전에는 이런 일을 주로 가족이 떠맡았다. 부모가 아프면 자식이 병원에 모시고 갔고, 거동이 불편해지면 며느리나 딸이 식사를 챙기고 몸을 씻겼으며, 마지막까지 집에서 부모를 돌보는 게 당연한 도리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의 규모가 작아지고 맞벌이가 일반화된 지금, 돌봄을 예전처럼 가족에게만 맡기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고령화의 문제는 단순히 노인이 많아지는 데 있지 않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그 돌봄을 담당할 사람은 오히려 줄어든다는..
― 교육경제학이 묻는 학령인구 감소, 대학 구조조정, 교사 수요와 AI 튜터 아이들이 줄어든다는 소식을 들으면 언뜻 이런 생각이 든다. 학생 수가 적어지면 한 교실에 앉는 아이도 줄고, 교사는 학생 한 명 한 명을 더 세심하게 바라볼 수 있으니 교육은 오히려 좋아지는 것 아닐까. 예전에는 한 반에 마흔 명이 넘는 아이들이 빽빽하게 앉아 수업을 들었지만, 이제 스무 명 남짓한 교실이 익숙해지고 있으니 적어도 수업환경만 놓고 보면 나빠질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교육은 학생 수 하나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학교라는 공간에는 교사와 교실뿐 아니라 친구와 선택과목, 도서관과 실험실, 급식과 통학, 대학과 지역경제까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가 줄어든다는 사실이 곧 교육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