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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Digital 물가자료 02-799-0741
진주만이나 미드웨이와 같은 전쟁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레이더는 살상무기는 아니지만 전쟁에서 꼭 필요한 장비이다. 1941년 12월 7일 새벽, 하와이 오아후섬 북단의 오파나 포인트. 이동식 레이더 앞에 앉아 있던 미 육군 병사 두 명이 화면에서 낯선 신호를 발견했다. 북쪽 바다에서 커다란 편대가 다가오고 있었고, 거리는 200킬로미터를 훌쩍 넘었다. 병사들은 곧바로 보고했지만 돌아온 말은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마침 본토에서 B-17 폭격기가 도착할 예정이었으므로 그 편대려니 한 것이다. 50분쯤 지나 진주만 상공에는 일본 항공기가 나타났다.이 장면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레이더가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은 분명히 먼저 보였다. 모자랐던 것은 탐지가 아니라 탐지된 정보를 판단과 행동으로 이어 ..
― 정찰기의 시선에서 제공권의 시대로, 전쟁은 어떻게 하늘로 넓어졌는가두 겹으로 포개진 날개 사이에 가느다란 지주가 서 있고, 그 사이를 철선이 팽팽하게 가로지른다. 조종석 위에는 덮개도 없어서 사람이 몸을 내밀면 그대로 바람을 맞았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의 복엽기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전투기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날렵하고 위협적이라기보다 하늘에 떠 있다는 사실부터 신기하게 느껴지는데, 이 작은 비행기들이 맡은 일도 처음에는 대체로 적을 내려다보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쟁터에서는 남의 움직임을 본다는 행위가 오래도록 구경에 머물 수 없었다. 비행기가 등장하기 전, 적의 위치를 알아내고 지휘관에게 소식을 가져오는 임무는 기병의 중요한 몫이었다. 말은 사람보다 빠르게 움직였고, 정찰대는..
1925년 6월, 영국의 육군 원수 더글러스 헤이그는 왕립수의학회 행사에서 연설을 했다. 비행기와 전차는 어디까지나 사람과 말을 거드는 보조 수단일 뿐이며, 앞으로도 혈통 좋은 말이 쓰일 곳은 지금껏 그래왔듯 충분하리라는 취지였다. 이 발언은 『타임스』에 실렸고, 훗날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군인의 대명사처럼 인용되곤 한다. 그런데 이 장면을 비웃기만 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다. 헤이그가 틀렸다는 건 결과를 아는 우리의 말이다. 그날 그 자리의 사람들에게 말은 수천 년 동안 한 번도 배신한 적 없는 무기였다. 속도를 지배하던 동물전장에서 속도는 곧 힘이었다. 적보다 먼저 도착하고, 흩어진 대열의 틈을 파고들고, 무너진 적을 끝까지 쫓아가 승부를 확정 짓는 일은 오랫동안 말의 몫이었다. 기병의..
1453년 5월 29일 새벽,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오스만 군에게 함락됐다. 이 도시는 천 년 가까이 난공불락으로 통했다. 5세기 초에 쌓은 육지 쪽 성벽은 해자와 바깥 성벽, 안쪽 성벽이 차례로 겹친 구조였고, 숱한 침략자가 그 앞에서 물러났다. 도시가 그렇게 오래 버틴 데는 두꺼운 돌벽의 몫이 컸다.그 성벽을 끝내 흔든 것은 대포였다. 오스만 군은 기술자 우르반이 만든 거대한 청동 대포를 비롯해 여러 문의 포를 끌고 와 50여 일 동안 같은 구간을 두들겼다. 물론 대포 때문에만 무너졌다고 말하면 지나치다. 방어군은 만 명에도 못 미쳤다고 전해지고, 공격군은 그보다 몇 배나 많았다. 그래도 높고 곧게 선 돌담이 쇠뭉치를 맞으면 약해진다는 사실이 이날 유럽 전체에 선명하게 새겨졌다.사실 충격은 그보다 조금 ..
'모순(矛盾)'이라는 말에는 창과 방패를 팔던 장사꾼이 나온다. 『한비자』에 실린 이야기다. 초나라 상인이 방패를 들고서는 어떤 창도 뚫지 못한다고 자랑하더니, 곧이어 창을 집어 들고는 어떤 방패든 뚫는다고 큰소리를 쳤다. 지켜보던 사람이 물었다.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찌 되느냐고. 상인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논리를 따지는 자리라면 상인이 진 게 맞다. 하지만 전쟁터는 그 질문 앞에서 입을 다물지 않았다. 뚫리면 더 단단한 방패를 만들고, 그 방패가 나오면 더 날카로운 창을 벼리면서 몇천 년 동안 몸으로 답해 왔다. 말 속에서는 허점이던 모순이 역사 속에서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 바퀴였던 셈이다.갑옷과 화살부터 보자. 중세 유럽의 기사는 쇠고리를 엮은 사슬갑옷으로 몸을 감쌌다. 그런데 석궁과 장궁..
― 미래경제와 삶의 질예전에는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의 삶도 따라서 좋아질 것이라고 믿기 쉬웠다. 공장이 더 바쁘게 돌아가고 기업의 매출이 늘어나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사람들의 생활도 그만큼 넉넉해질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가난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는 경제성장이 집과 음식, 의료와 교육을 개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풍요로워진 뒤부터는 사정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소득이 늘어도 사람은 여전히 피곤할 수 있고, 넓은 집에서 혼자 외로울 수도 있으며, 생산성이 높아졌는데도 아침부터 밤까지 일해야 한다면 삶이 좋아졌다고 선뜻 말하기 어렵다.그런데 이제는 여기에 새로운 변화까지 더해졌다. 사람은 줄어들고 있고, 그 빈자리를 로봇과 인공지능이 조금씩 메우기 시작했다. 보고서를 정리하고 번역..
― 채용 감소, 직무 재설계, 소수정예 조직과 AI 에이전트예전에는 회사가 커지면 일단 사람부터 뽑았다. 주문이 늘면 영업사원을 들이고, 거래처가 많아지면 회계와 관리 인력을 보탰으며, 보고서가 쌓이면 사무직을 늘렸다. 직원 수가 곧 회사의 덩치였고, 사람이 많다는 것은 어느 정도 성장의 증거이기도 했다. 그런데 AI가 회사 안으로 들어오면서 이 익숙한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보고서를 정리하고 자료를 찾고 이메일을 쓰고 고객 문의에 답하는 일을 AI가 순식간에 해낸다면, 회사는 예전처럼 같은 수의 사람을 계속 뽑아야 할까. 이제 채용공고를 내기 전에 기업이 먼저 던질 질문은 "사람을 한 명 더 뽑을까"가 아니라 **"이 일을 사람이 해야 하는가, AI가 할 수 있는가"**가 될지도 모른다.AI가 일자리에..
― 이민의 경제학사람이 모자라면 사람을 데려오면 된다.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해법이다. 수확철마다 일손이 달리는 농촌이 있고, 구인광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는 지방 공장이 있다. 조선소와 건설현장, 식당과 돌봄 현장에서도 하소연은 비슷하다. 젊은 사람은 줄어드는데 일은 그대로이니, 외국인 노동자가 그 빈자리를 메우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실제로 한국의 생산현장은 이미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외국인을 더 받아들이면 인구감소도 풀릴까. 일손 부족에는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인구감소 전체를 풀어줄 만능열쇠는 아니다.인구가 줄면 경제는 먼저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모습으로 타격을 받는다. 기업은 사람을 못 구해 생산을 줄이거나 임금을 올려야 하고,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내는 사람도 함께 줄어든다..
